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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해는 빛이 거의 없는 암흑의 세계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생명체들은 끊임없이 소통하고 있다.
소리, 빛, 화학 물질을 이용한 신호 전달은 심해 생물들이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이번 글에서는 심해 생물들이 어떻게 신호를 주고받으며, 이를 통해 포식자나 먹이를 피하고 동족과 협력하는지에 대해 살펴보겠다.
[목차]
1. 심해 생물들은 어떻게 의사소통할까?
심해에서 생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신호를 주고받는다. 물속에서는 빛이 빠르게 흡수되므로, 대부분의 심해에서는 시각적 신호보다 소리, 생체발광, 화학적 신호가 더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이 된다.
- 소리(음향 신호): 일부 해양 포유류와 물고기들은 특정 주파수의 소리를 내어 의사소통한다.
- 생체발광(빛 신호): 빛을 이용해 자신을 보호하거나 짝짓기 신호를 보낸다.
- 화학적 신호(페로몬 등): 동료를 찾거나 위험을 경고하는 데 사용된다.
이제, 이 신호 전달 방식을 실제 심해 생물들의 사례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자.
2. 빛을 이용한 의사소통 – 심해 오징어의 생체발광 전략
깊은 바닷속, 완전한 어둠 속에서 한 마리의 반딧불오징어(Watasenia scintillans)가 부드럽게 헤엄치고 있었다. 이 작은 오징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노출시키지 않으면서도 동료들과 소통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반딧불오징어는 몸의 특정 부분에서 청색과 녹색의 미세한 빛을 발산한다. 이 빛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신호의 역할을 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 오징어는 짝짓기 시즌이 되면 빛의 패턴을 변화시켜 이성과 소통한다. 특정한 깜빡임 패턴을 통해 같은 종의 개체들에게 존재를 알리며, 서로를 인식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 반딧불오징어는 위장을 위한 생체발광(역광 발광, Counter-illumination)을 활용한다.
심해에서는 위에서 비치는 희미한 빛이 있어 아래쪽이 어두운 생물은 쉽게 포식자의 눈에 띈다.
반딧불오징어는 배 쪽에서 약한 빛을 내어 자신의 실루엣을 감추는 능력이 있다. 이 방식은 포식자로부터 도망치는 중요한 전략 중 하나다.
이처럼 심해 생물들은 단순히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정교한 신호 체계를 구축하여 동료와 소통하고 적을 피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3. 소리로 대화하는 고래와 물고기들
빛이 닿지 않는 심해에서는 소리가 가장 강력한 신호 전달 수단이 된다. 물속에서는 빛보다 소리가 더 멀리, 빠르게 퍼지기 때문이다. 특히 고래류와 일부 물고기들은 다양한 주파수의 소리를 이용해 동료와 소통하고, 먹이를 찾으며, 포식자를 감지한다.
그중에서도 향유고래(Sperm Whale) 는 세계에서 가장 시끄러운 동물 중 하나로, '클릭' 소리를 이용한 독특한 소통 방식을 가지고 있다.
향유고래의 ‘클릭’ 소리 – 해저의 대화를 엿듣다
한 무리의 향유고래가 심해 1,000m 아래를 유영하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바닷속에서 눈으로는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환경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침묵 속에서도 서로의 존재를 감지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딸깍, 딸깍’ 하는 일정한 패턴의 소리가 연속적으로 울려 퍼졌다. 이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코드(Code)' 라 불리는 특정 패턴의 신호였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향유고래는 각 개체마다 고유한 코드 패턴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개체 간의 소속을 구분하고 무리 내 서열을 파악한다. 마치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듯이, 향유고래는 소리로 서로를 식별하며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형성한다.
예를 들어, 연구팀이 카리브해에서 촬영한 향유고래 무리는 다섯 개의 독특한 '클릭' 패턴을 사용하고 있었다. 이 패턴은 단순한 신호가 아니라 고래 가족 간의 유대감과 무리 내 역할을 나타내는 일종의 '방언(Dialect)' 으로 해석되었다.
고래뿐만 아니라 물고기도 소리로 소통한다
고래뿐만 아니라, 일부 물고기들도 특정한 소리를 이용해 동료들과 소통한다.
심해 돗돔(Midshipman Fish)의 울음소리
돗돔(Porcupinefish) 중 일부는 짝짓기 시즌이 되면 저주파의 울음소리를 낸다. 이 소리는 수십 미터까지 퍼지며, 짝을 유인하는 신호로 사용된다.
대구(Cod)와 명태(Pollock)의 소리 신호
대구과 어류는 자신의 부레(Swim bladder)를 진동시켜 '두드리는 소리' 를 낸다. 이 소리는 무리 내에서 위치를 알리거나, 포식자의 접근을 경고하는 기능을 한다.
돛새치(Sailfish)의 소리 신호
돛새치는 사냥을 할 때 빠르게 이동하며, 작은 물고기 떼를 몰아넣기 위해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이는 협력 사냥에 유용하게 작용한다.
소리를 이용한 심해 생물들의 의사소통 – 보이지 않는 신호 네트워크
이처럼, 심해 생물들은 빛이 없는 환경에서도 고주파와 저주파 소리를 활용하여 긴 거리에서도 의사소통할 수 있다.
- 향유고래는 ‘클릭’ 소리로 개체 간의 관계를 형성하고, 에코로케이션으로 먹이를 찾는다.
- 돗돔과 대구 같은 일부 물고기들은 부레를 이용해 소리를 내며 무리 내 의사소통을 한다.
- 돛새치는 사냥을 위해 포식자들끼리 협력 신호를 보낸다.
심해는 인간이 상상하기 어려운 극한 환경이지만, 그곳에서도 생명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신호 체계를 연구함으로써 심해 생물들의 복잡한 생태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화학적 신호 – 심해 게의 독특한 경고 메시지
깊은 바닷속 해저, 한 마리의 심해 게(Bathyplectes)가 바위틈 사이에서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 게는 자신의 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한 화학 신호를 사용했다.
일부 심해 게들은 포식자가 접근하면 몸에서 강한 냄새가 나는 화학 물질을 방출한다. 이 물질은 같은 종의 다른 게들에게 위험을 알리는 역할을 한다. 연구자들은 심해 게들이 이러한 화학 신호를 통해 먹이 위치를 공유하거나 짝짓기 상대를 찾을 때에도 활용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또한, 일부 해양 벌레(Worm)들은 독특한 화학 물질을 분비하여 포식자의 후각을 교란시키거나 자신을 독성이 있는 생물처럼 보이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이처럼, 심해 생물들은 보이지 않는 신호로도 서로 소통하며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5. 전기 신호 – 심해 가오리의 감각 네트워크
심해에서는 전기 신호를 이용해 주변 환경을 탐색하는 생물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전기가오리(Electric Ray) 다.
한 마리의 전기가오리가 해저를 조용히 지나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반적인 가오리와 다를 바 없어 보였지만, 이 생물은 특별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가오리는 머리 주변에 로렌 치니 기관(Ampullae of Lorenzini)이라는 미세한 감각 기관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주변의 전기장을 감지한다.
이 능력은 주로 포식자 탐지, 먹이 찾기, 짝짓기 상대 찾기 등에 사용된다. 예를 들어, 바닷속 모래에 숨어 있는 작은 물고기는 보이지 않지만, 미세한 전기 신호를 감지하면 그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이처럼, 심해 생물들은 빛이 없는 극한 환경에서도 전기 신호를 활용하여 주변과 소통하고 생존하는 전략을 발달시켜 왔다.
심해는 빛이 닿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그곳에 사는 생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신호를 주고받으며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 생체발광, 음향 신호, 화학적 신호, 전기 신호 등 각 생물마다 자신만의 독특한 소통 방식을 발전시켜 왔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심해 생물들의 또 다른 신호 체계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심해 탐사가 계속될수록 더 많은 흥미로운 발견이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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